개인적취향/영화

심야의 FM

허무주의자 2010. 11. 2. 01:36
미리니름 항상 있습니다.


 영화는 한 라디오 방송 DJ의 은퇴 방송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해프닝을 담고 있다. 말 그대로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다. 살인마, 여자 DJ, 라디오방송 등의 소재는 그간 자주 보던 영화적 소재로써 어떻게 보면 대단히 전형적이고 진부한 장르영화가 될 수 도 있었으나 감독은 그것을 무리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게 만들었다. 장르적 공식에 입각해서 무난하고 괜찮은 스릴러 영화를 창조해 낸 것이다. 마침 국내 영화 위기설도 있겠다, 역시 집안에서 구질구질한 불법다운로더가 되어서 감상하는 것보다는 영화관에서 차고 넘치게 관람하는 편이 좋지아니한가. 


    
    (너무 착해서 탈인 이 남자.)


 주연급의 두 인물간의 갈등이 주된 플롯의 줄기이다. 우선 배우 이야기부터 하자면, 시네필이자 정신질환자인 한동수 역의 유지태와 미모와 비명을 한껏 뽐내시는 고선영 역의 수애의 열연이 돋보였다. 최송현도 이 작품이 스크린데뷔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연기를 보여준다.(그렇지만 내 맘에 들지는 않았다. 별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수애도 물론 훌륭했지만 그보다 내가 언급하고 싶은것은 유지태다. 그는 흔해빠진 망상에 빠진 싸이코 살인마역할을 맡았는데 이렇게 착한 얼굴로 어떻게 이런 끔찍한 악마성을 표출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올드보이'에서의 이우진도 충분히 악랄했지만 이번에는 좀 더 투박하고 거친 육체파 캐릭터로서, 이우진이 간접적으로 우회해서 복수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꽤나 직설적인 방법으로 고선영의 아름다운 은퇴를 방해한다. 그러나 이우진과 한동수, 둘 다 지나치게 순수했다. 태양을 향하여 한없이 날갯짓하다 추락해버린 이카루스처럼. 이상적인 사랑을 꿈꾸는 이우진과 이상적인 정의를 꿈꾸는 한동수, 그리고 비극으로 막을 내리는 그들의 인생. 클로즈업 되는 그들의 슬픈 눈. 


     
        (트래비스 役의 로버트 드니로. 파격적인 이 라스트씬은 카우보이 비밥의 최후의          장면에도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표면적인 주제는 극중에 등장하는 영화 속 영화인 택시드라이버의 트래비스가 그랬던 것처럼 가증스런 범법자에 대한 살인은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일것이다. 이전에도  반(反)영웅, 안티히어로의 범법자에게 가해지는 단죄 행위를 표현한 영화에 대해 우리는 심정적으로 동조를 했고, 그를 넘어서서 환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성적, 법제적으로 보면 처단자도 결국 범법자들의 인권을 압제하고 말살한 같은 범죄자이다. 영화는 그런 우리의 이중성을 파고든다. 스파이더맨, 코너와 머피('분닥 세인트')는 되고 한동수는 안된다니? 

 사실 한동수가 고선영의 동생을 죽이는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행위 전반에 대한 명분을 모조리 상실하게 되고 영웅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한낱 추잡한 살인마로 추락하며, 그이후로 우리는 인간적인 시선으로 그를 바라볼 수 없게 되는데 이것이 이 영화의 크나큰 패착이 되었다. 어불성설이 된 것이다. 한동수가 고선영의 동생을 죽인 순간 그는 이미 그가 상정하는 쓰레기의 범위에 포함되었으므로 자신이 직접 스스로 자살을 하는 것이 옳았다. 결국 좀 더 무겁고 있어보이는 주제의식을 가진 영화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 손으로 놓쳐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한동수의 비중이 높아서 자칫 한동수의 영화가 될 뻔 했는데, 이런 한동수를 만든 것은 고선영이다. 그녀는 마치 다크나이트에서 정의의 기사였던 하비 덴트를 악마가 되도록 등을 떠민 조커를 보는 듯 했다. 물론 직접적으로 사주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그들에게 그런식으로 해석할 여지를 준 계기가 된 것이다.  상처 입은 자에게 다가가는 말의 위력이 어느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것은 아이폰 광고가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유지태의 행위는 고선영의 동생과 재수없는 남성 엑스트라1을 죽게했지만 그들간의 보이지 않는 금을 하나로 통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로에게 날선 말들로 상처를 입히던 PD와 고선영. 상대방의 프라이드에 흠집을 내며 벌어져있던 극 초반의 모습과 종반에 PD가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수애에게 안부를 묻는 장면은 서로 대조적으로 보여지며 이는 그들간의 화합을 의미한다. 유지태가 아닌 또 다른 긍정적인 스토커남 또한 그 자신의 어떠한 불순한 의도의 부재를 온몸으로 증명함으로써 결국 수애로부터 미소라는 화답을 받는다. 고선영은 자신의 딸에게도 그동안 엄마로서의 역할을 못했던 기간을 용서받게 된다. 오해는 해결되고, 앙금은 풀렸다. 


 영화 내내 시종일관 관객들을 쥐었다 놓았다 하는 연출은 꽤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유지태와 경찰, 고선영 삼자간의 두뇌 싸움은 마치 쏘우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작중 내내 유지태에게 끌려다니는 수애의 모습은 솔직히 짜증났다. 만약, 한동수가 고선영이 아닌 신해철의 고스트 스테이션의 팬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 된다면, 영화 제목을 심야의 FM이 아니라 악마를 보았다로 바꿨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