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에 대한 장르적 시각에 입각해 분석한 글로써,
우선 한국 공포영화의 토양에 대해 짤막하게 논해보고자 한다.
공포영화, 특히 종래 한국 고전 공포영화라 함은 ‘월하의 공동묘지’, ‘월녀의 한’등 전통적으로 여귀신들이 하얀 소복을 입고 소름끼치는 울음소리로 관객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빠트리곤 하는데, 이런 한국의 공포영화는 전통적인 한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감정에 사무친 처녀귀신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고 그에 햡당한 복수를 위해 현세에 귀신이라는 형태를 빌어 귀환하고 어떤 절차를 거쳐서든 간에 결국 복수를 하고는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고전 공포영화는 그 촌스럽고 어설픈 속성 때문에 점차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이에 걸맞게 공포영화의 괴물 또한 점차 외부의 공포에서 내부의 현실적인 공포로 옮겨져 온다. ‘하녀’에서의 불륜, ‘여곡성’의 고부갈등, ‘깊은 밤 갑자기’의 불륜 등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 하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이 그 공포의 근원적인 대상으로 여겨지는 영화들이 대거 등장했고, 이는 굳이 귀신이라는 존재가 등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관객들에게 공포를 줄 수 있다는 기대감을 부여함과 동시에 한국의 가족주의가 무서운 영화 속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또 한편으로는 남성우월적인 시각을 비판하는 측면도 있었다.)
(上 장화홍련전, 1936년 작 下 장화,홍련, 2003년 작)
한국에서 이러한 공포영화는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마이너한 장르, 괴짜 장르로 취급되었고 ‘여고괴담’, ‘장화홍련’등의 몇몇 명작만을 제외하고는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제는 여름 성수기 시절에 한철 장사로써 반짝 등장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공포물이 속출하기 시작했고 여고괴담처럼 저명한 넘버링 시리즈 또한 가면 갈수록 통속적인 내용과 문제의식 없는 일본공포영화 따라잡기에 불과한 따분한 패턴이라는 오명을 안게 되었다. 기담은 그런 암울한 한국 공포영화계의 한 가운데서 혜성처럼 나타나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작품성은 좋았으나 결국 흥행은 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기담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특히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과 미학적인 영상미가 탁월했는데, 이런 특질은 장화홍련 때부터 점차 동시대 한국 공포영화의 표준이 되어가고 있는 듯했다.
(아래에 언급될 예시 장면으로써의 아사코. 확연하게 두 장면의 장르적 차이가 느껴진다.)
기담으로 돌아와서 이야기해보자면, 기담은 기본적으로 플래시백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극중 정남은 의대 교수로써 자신의 과거의 끔찍했던 일을 자신에게 보내진 과거의 사진첩을 계기로 회상하게 된다. 기담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모두 같은 한 장소, 안생병원에서 동시간대에 벌어난 일을 각 인물들의 관점에서 보여주는 형식으로 이전 영화들의 연출에 많이 빚을 진 듯한 느낌이었다. 사실 공포영화는 별도의 특정한 연출적 특징이 존재하지 않지만, 조명과 그 어두운 분위기는 질서의 장르에 부합한다. 기담은 이런 특징에 있어 일견 공포영화의 형태(ex.귀신이 등장하는 씬)를 지니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멜로 드라마처럼 아름답거나 슬픈 장면을 그려낼 필요가 있을 때(ex.아사코의 엄마가 새아버지를 아사코에게 소개하는 씬)마다 보조광으로 부드럽게 화면을 표현하는 등 질서와 통합의 장르를 아우르는 양가적 성격을 띄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기담속의 괴물을 고찰해보기로 한다. 기담은 전통적으로 유교가치관이 지배하며 가부장적인 사회풍토를 가진 일제 치하의 한국사회라는 시대적 배경이다. 기담 속의 괴물은 동양 공포영화가 으레 그렇듯이 모두 귀신의 모습으로 형상화되는데 셋 다 여자의 모습이며, 그 괴물은 영화 내내 ‘어긋난 사랑’이라는 주제로 일관되게 표현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세명의 여귀들의(김인영은 실제 사람이지만, 스크린 속에서의 광기어린 모습은 그다지 귀신과 다르게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더욱 끔찍한 살인을 일삼는 살인귀이다.) 여성성은 열등성의 표시로써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힘들었지만 마지막 에피소드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히 그렇게 느낄 수가 있었다. 김인영은 개화기 시절, 여권신장에 힘입어 의사가 된 여자라는 엘리트로 설정된 인물이지만 그런 그녀가 정신분열증에 연쇄살인까지 일삼는 살인귀가 된 것은 사랑을 잃은 그녀가 여자였기 때문이리라. 이는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간(남편의 죽음은 일본 대장에 대한 수술 집도의 실패에 인한 결과로 이에 대한 원인은 수술 현장에 있던 그들 모두에게 있었다.) 과부는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암시한다.
(너라고 부를게~ 뭐라고 하든지~)
에피소드별로 다시금 분석을 해보자면 우선 첫 번째, 진구의 에피소드는 진구와 죽은 원장 딸의 네크로필리아를 다루고 있었다. 죽은 아오이의 어머니인 원장이 스님에게 진구와의 영혼결혼식이라는 무속적인 절차를 의뢰했기에 그들의 어긋난 사랑의 인과율이 맺어지게 된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일제치하의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죽은 이의 넋을 기리기 위해 무덤을 만들고 그 속에 시체를 매장하고, 제사를 지내는 유교권 국가에서 시체라는 소재 자체가 일종의 성역이자, 금기시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성적인 터부시 또한 유교적 관습으로써 존재해왔는데 진구는 이렇게 금기시 되는 시체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런 시체와 금기시 되는 관계를 맺는다. 이는 윤리적으로 매우 비도덕적이고 불온한 것으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인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한계로 설정된 금기들을 모두 허물어 버린 것은 유교적 관념에서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상식으로 비추어 볼 때도 상당히 불쾌하고 불편한 성질의 것이다.
(우리 아사코가 달라졌어요)
두 번째 이야기는 엘렉트라 컴플렉스와 공포영화 속에 등장하는 위험한 아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아사코가 새아버지가 들어옴으로 인해서 겪게 되는 심리적 방황과,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보여준다. 아사코는 새아버지와 관계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고 버림받았다는 감정에 휩싸여 어머니에 대한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한편 새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감정으로 표출되는데 이는 곧 일가족 모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비참한 방아쇠가 되어버린다. 이 또한 한국적인 가족주의의 관점에서 미루어 볼 때 패륜적이고 끔찍한 일이다. 말 잘 듣고 착했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간접적인 살인범, 즉 위험한 아이가 된 것이다. 이는 관객들에게 꽤나 현실적인 이야기로 다가와서 극중에 등장하는 엄마 귀신만큼이나 그 상황에 대한 공포감을 유발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극 중 이수인 또한 아사코를 치료하면서 아사코의 경우와 비슷한 자신의 과거 경험을 떠올리게 되고 사랑인 듯 아닌 듯 뭔가 미묘한 감정이 싹트게 되는데, 이 또한 로리타 컴플렉스로 보게 된다면 역시 어긋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mama, just killed a man~)
마지막은 정신분열증 환자를 괴물로 상정하고 있는데, 자아를 죽이고 이미 예전에 죽은 남편을 자신의 내면에 동일화해서 살아가고 있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안에 또 다른 내가 있다’라는 이중성은 일제 시대라는 시대적 배경에 미루어 볼 때 국내에 거주하는 독립투사와 친일파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자문이나(그림자가 없다는 것은 비인간성,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을 나타낸 것이고 이는 친일파에 대한 은유로 작용해 최후에 죽음으로써 단죄하는 듯 보였다.) 혹은 근대화의 허영 속에 혼란을 겪고 방황하는 인물을 표현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일반적인 정상인과 다른 정신병자에 대한 일반의 적개심일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멀리 가지 않아도 이 에피소드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죽은 사랑에 대한 집착, 위험한 과부를 표현한 이야기이다. 역시 이번에도 메인 테마는 어긋난 사랑이다.
최종적으로 모든 사랑하는 사람은 안생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진구와 영혼결혼식을 맺은 아오이도 안생병원에서 또 한번 죽었고, 그리고 자살한 원장과 아사코, 아사코에게 또 다른 감정을 품게 된 이수인, 그리고 김인영. 최종적으로 진구도 안생병원에서 그날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들의 어긋난 사랑은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미루어보아 있어서는 안될 규탄적인 성격의 것이고 그렇게 뒤틀린 영화 속의 사랑을 정당화 시킬 수 없기에 그 원인이 된 인물들을 모두 죽이는 보수적인 방법을 통해서 스크린 속의 그들의 파괴적인 욕망을 심판하고 결국 파국적인 엔딩으로 향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담은 ‘어긋난 사랑’이라는 금기시하고 억압되었던 타자의 귀환을 ‘죽음’이라는 방법으로 소멸시키고 거부하면서 다시금 억누르는 공포영화의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분석은 했지만 사실 기담은 공포영화라기보다는 한 편의 슬픈 로맨스 드라마
같았다. 보고 무섭다는 느낌보다는 슬프고 적적한 느낌이 들었으니 말이다. 김인영의 마지막 대사가 떠오른다.
만루 끝내기 홈런 타자(打者)의 귀환을 기다리는 한국 공포영화계의 텅 빈 관객석도 여전히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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